마음의 잠
김중일
어느 날 마음이 잠들어 있는데
친구가 찾아왔다
마음도 없이
문을 열어주었다
때마침 깜박 마음이 잠들어 있는데
애인에게 전화가 왔다
마음도 없이 길게 통화했다
늘 깨어 있는데 하필이면 잠들어 있을 때 그런 오해를 살 만한 일들이 있다고 해명해도
그런 소리 말고 평소에 마음을 좀 흔들어 깨워보라는 친구의 간곡한 충고에
때마침 깨어 있는 마음을 보란 듯이 또 흔들어 깨워본다
내 순한 마음은 가만히 있다가 불시에 얻어맞은 기분이 된다
그러기를 수차례 차라리 마음은 이제 거의 잠들어 있다
(깨어 있는데 누가 흔든다고 또 깰 수는 없으니)
흔들면 언제든 깰 수 있게, 잠들어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위험하다
자칫 크레바스처럼 좁고 깊은 잠에 빠지면, 마음은 영원히 눈을 뜨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위험한 일이 있다
이를테면,
마음은 지금 한창 꿈을 꾸고 있다
마음에 꼭 맞는 다른
몸을 얻는 꿈을
꿈일 뿐인 꿈을 꾸기 시작하면 마음은 제 몸에 마음 붙이지 못하게 된다
불가능한 일이다, 어차피 마음에 꼭 맞는 단 하나의 몸 따위는 애초에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죽은 누군가의 몸에 대해 애써 기억하고
하물며 신도 제 마음을 수십억 개로 찢어, 인간이라는 몸을 나눠 입혔으니
흔히 알 듯 마음의 잠은 죽음이 아니다
단 한 벌이던 몸은 깨끗이 세탁되고
세상을 덮을 솜이불로 지어지는 중인 죽은 이들의 마음에,
한 조각의 내 마음을 기워 붙이는 일이다
다만
마음은 이 순간에도 새로운 모양으로 계속 태어나므로
우리 마음의 잠은 영원히 완성되지 않는다
⸻계간 《작가들》 2020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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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일 / 1977년 서울 출생. 2002년 〈동아일보〉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국경꽃집』 『아무튼 씨 미안해요』 『내가 살아갈 사람』 『가슴에서 사슴까지』.
에듀컬 코이노니아
2023. 2. 16. 15: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