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위한 미래, 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
오늘을 위한 미래
8장 선교적 정치
_딘 플레밍
우리가 파악하지 못했던 것은 복음의 심오한 정치적 성격이다. 당파 정치에 관해 말하는 게 아니다. 복음은 정치적이다. 정치는 우리가 함께하는 공적 삶을 조직하는 방식과 관련 있기 때문이다. 정치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누가 또는 무엇이 권력을 가지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 권력이 사용되는지에 관여한다. 유진 피터슨은 예수님이 설교하신 "하나님 나라"의 언어 자체가 "전체적으로 하나의 정치적 은유“로서,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통치 아래 포함하는 복음을 고집한다"는 점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237.
시민종교는 종종 민족주의(nationalism), 즉 국가에 대한 극단적 헌신과 관련이 있는데, 이는 자기 나라를 다른 모든 나라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마이클 고먼은 이렇게 말한다. "이 헌신은 종종 그 민족이 하나님의 선택, 축복, 임명을 받았으며, 그들의 힘과 부는 하나님의 승인 표시라는 확신에 근거한다."12 이는 당연히 다른 민족들과 나라들은 같은 식으로 하나님의 관심과 축복을 받지 못했음을 의미하며, 여러 나라 출신의 예배자 군중이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싸고 있는 요한의 환상과는 반대된다(계 7:9-10).
민족주의적 모습을 가진 시민 종교는, 한 나라의 힘과 사명을('지구상 가장 위대한 나라'로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하는 미국) 하나님의 영광과 사명인 줄로 종종 혼동한다. 246.
모든 세대와 문화에서 교회는 정상적인 정치적 수단, 즉 짐승의 권력을 가지고 목표들을 성취하라는 유혹을 받는다. 예를 들어, 이런 일은 우리가 전반적으로 강제력을 동원하여 우리의 의제를 사회에 강요하려고 시도할 때("미국을 다시 하나님께 바치자') 일어난다. 그런 방법은 십자가에 못 박힌 어린양의 복음을 파괴한다. 우리는 단순히 인간적 방법들을 가지고서 공적 광장에서의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할 수 없다. 그 대신 우리는 어린양의 권력을 체현하라는 부름을 받는다. 어린양의 권력은 예언자적이며, 수동적이지 않다. 그 권력은 상처 입을 수 있다. 희생적이다. 반직관적이다. 우리가 우리의 문화와 정치에 공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은 우리가 고백하는 복음과 일관되어야 한다.248.
로마서 13장과 요한계시록 13장 사이의 긴장은 신약성경 저자들이 복음을 상황화'하는 고전적 사례를 보여 준다!5
로마서 13장에서 통치 권위에 대한 바울의 태도는 일종의 가장 좋은 시나리오, 즉 인간 통치자들이 그들 의 시민들을 섬기고 일반적으로 책임 있는 방식으로 정의를 실행함으로써 그들에게 하나님이 부여하신 역할을 성취할 때를 전제한 것이다. 더욱이 바울은 명백히,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이 반사회적 행동에 참여하거나 세금 내기를 거부한다면 교회가 비난을 받고 교회의 공적 증언이 손상될 수 있다 는 점을 염려하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런 불복종은 이미 주변화된 로마의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선교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었다.
요한계시록 13장은 근본적으로 다른 상황, 즉 그리스도에 대한 복종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만 속한 권위를 찬탈한 우상숭배적 제국과 충돌하게 만드는 상황을 전제한다.
요한은 그 짐승의 권위가 하나님이 아닌 사탄에게서 나온다고 보고 있으므로(계 13:2,4), 통치 권력에 복종하는 것은 선택지가 아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13장은 민족 국가나 다른 어떤 정치적 인물 혹은 실체에 대한 맹목적 충성을 결코 정당화할 수 없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말하는 것을 멈추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 5:29)라고 담대하게 선언했던 것 을 떠올려 보라. 249.
"정부의 권위는 하나님 백성의 선을 위한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정부가 정의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불의를 지속하는데, 자유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노예제를 유지하는데, 억압과 비인간적 구조들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지탱하는 데 그 칼을 사용하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대리자가 된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정부가 더 이상 선과 악, 인간화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구별하지 않을 때 그 정부는 더 이상 하나님의 종이 아니며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이다."
_ 알란 부삭 250
선교적 요한계시록 읽기에서는, 바벨론 같은 상징이 어떻게 당시 교회의 상상력과 실천을 재형성하기 위해 소환되었는지 물을 뿐 아니라 어떻게 그것이 지금도 그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묻는다. 256.
요한계시록 17장과 18장을 선교적으로 읽는 것은, 창조 세계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하는 또한 정의로운 목적이라는 관점에서 우리의 세계 를 새롭게 상상하게 할 뿐 아니라, 일상의 실천을 통해 우리의 상황 안에서 하나님의 선교를 구현하며 그 변혁된 비전에 응답하도록 우리를 강권한다.
요한은 그의 청중에게 바빌론에서 나오는 것이 무엇인지 세세하게 기술해 주지 않으며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없다.
모든 세대, 문화, 선교적 상황속 교 회들은 스스로 그 도시를 떠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씨름하며 알아 가야 한다. 2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