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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 운동

사랑없는 이벤트성 전도는 종교인을 낳을 뿐이다.

by 에듀컬 코이노니아 2009. 6. 16.

사랑은 제자를 낳는다. 


사랑없는 이벤트성 전도는 종교인을 낳을 뿐이다.


전도에 대한 솔직한 생각 

길을 거닐면서 만날 수 있는 전도의 방식은 짐짓 강압적으로 보인다. 비닐 종이에 단단히 포장되어 가판대에 놓여 있는 잡지처럼, 또는 돈이 다급한 사람에게 담보를 잡고 돈을 빌려주는 고리대금업자들의 사채업무처럼 하나님을 이리저리 팔고 다니는 경우를 종종 만날 수 있다. 


전도란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의 목구멍 속으로 억지로 밀어넣으면서 자기가 소개하고자 하는 개론이나 성경에서 인용한 구절들을 받아들이거나 따라하지 않을 시에는 당장이라도 지옥불에 떨어질 것처럼 위협하는 말이 되어 버렸다. 또한 그 전도자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다 하나님의 은혜와 동떨어져 있다고 단정짓는 의미가 되었다. 더군다나 텔레비젼이 모든 문화에서 가장 선두 자리를 차지하게 되자 전도라는 말은 더욱 답답하고, 음울하며 심지어는 천박한 느낌까지 주는 ‘종교 용어’가 되고 말았다. 전도는 기계적인 일인극이요, 부정직한 상술이며, 아무도 부탁하지 않은 설교요, 위선자의 눈물이고, 불편한 대립이며, 과장된 눈맞춤이요, 한 사람의 영혼과 그의 영원한 운명에 대한 지나칠 정도로 진지한 선언이다. 어디선가 이런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그렇소, 그 말이 바로 정답이요, 그것이 바로 당신들이 말하는 전도의 참모습이요. 당신네들이 지금 종교라는 공장을 가동시키려고 더 많은 인간연료를 구하러 다니느라 갖은 애를 쓰고 있는 것 아니오?”


좋은 전도자란 

신앙이나 소망과 같은 가치나 의미, 목적이나 선 또는 아름다움이나 진리, 죽기 전의 삶과 같은 중요하고 심오한 주제에 대하여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뜻을 주입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께 부름받은 사람임을 깨달았기 때문에 전도자가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인생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분별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만이 이타적이고 바르게 살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전도자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임무와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열정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세상을 바꾸고 싶어한다. 


좋은 전도 방법이란 

선한 행실과 유익한 대화를 통하여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고, 설득하려고 애쓰지도 않으면서 그들과의 우정을 유지시킨다. 그래서 이같은 크리스천들은 전도를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과 그 분께서 보여주신 모범을 따라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 예수님은 지금까지의 전형적인 전도 방법과는 달리 설교는 짧고 대화는 길게, 대답은 짧고 질문은 길게, 그리고 추상적인 제안은 짧고 일화와 비유는 길게, 말씀하셨다. ... 이 책을 통하여 우리가 탐구해 보고자 하는 전도방법이 바로 이것이다. 예수님이 사용하셨던 방식의 전도, 마치 춤추듯이 부드럽게 행동하는 것이다. 


전도는 당신 자신을 뛰어넘으면서 시작된다. 

노래를 생각해 보자.  당신이 어떤 노래의 악보를 보면 처음엔 가사 몇 개와 문장 몇 마디만 눈에 들어올 뿐, 그 노래 자체는 생소하기만 하다. 그러나 일단 그 노래를 귀로 듣게 되면 훨씬 빨리 마음 속을 파고 들어오면서 어느새 내 영으로까지 스며들게 된다. 그 노래가 점점 친숙하고 자연스럽게 다가오면서 마치 내가 직접 만든 노래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좀 더 익숙해 지면 그 노래에 맞춰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박자에 맞춰 몸을 흔들기도 한다. 그러면서, “내가 이 노래를 어디서 들은 적이 있었던가? 내가 어떻게 이 노래를 알고 있지?”하면서 가우뚱하기도 할 것이다. 

복음도 마찬가지이다. 복음은 TV나 라디오에 나오는 광고가 아니다. 정치적인 구호나 캠페인도 아니다. 수업시간에 배우는 수학공식도 아니다. 그것은 노래이다. 어느 날 일상적인 생활을 하다가 문득 그 노래를 듣게 되면 그 노래의 리듬과 멜로디와 분위기와 아름다움이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게 하고 그 노래에 맞춰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렇게 해서 당신은 춤을 추게 되는 것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당신의 삶은 온전히 그 노래와 화음을 이루게 된다. 노래의 리듬이 당신을 깨우고 노래의 박자가 당신을 움직이게 한다. 노래의 음조에 따라 공명이 일어나고 곡조의 흐름에 자신을 맡겨 버린다. 이제 당신은 노래의 가사를 통하여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점차적으로 그 노래에 담겨 있는 메시지와 기쁨과 춤을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얻게 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음악을 듣는다면 미움은 화해로, 불평은 감사로, 탐욕은 관용으로, 눈물은 춤으로 바뀔 것이다. 사람들이 노래에 따라 살게 되면 그들은 환경을 오염시키는 행위를 멈추고 오히려 동산에 나무를 심을 것이다. 그들은 싸움을 중단하고 서로에게 허물없이 장난을 걸거나 즐거운 소풍이나 파티를 열어 떠들썩 하게 게임을 즐기면서 자신들이 즐길 수 있는 모든 기쁨을 만끽하게 될 것이다. 진정으로 노래의 의미를 느끼고, 그 노래에 따라 살게 되면 당신은 자연스럽게 그 사람들도 당신과 동일한 것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진다. 


브라이언 맥클라렌 “나는 준비된 전도자” 서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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