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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삶세상
미션얼✗퍼머컬처 9나라는 미션얼✗퍼머컬처 운동가"근근이 먹고사는 것." 아버지와 어머니를 통해 배운 삶의 방식이었다. 다섯 식구가 살기 위해 아등바등 근근이 먹고 살았다. 세 자식을 공부시키고 조금 따뜻하게 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내게 되물으신다. "니가 진짜 좋아하는 일들을 위해 근근이 먹고 살 수 있나? 니가 진짜 좋아하는 일은 뭐꼬?" 나는 아직도 이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한다.그 질문을 안은 채로, 나는 미션얼 디자이너로 보냄 받은 이곳 배나무골에서 배움과 가르침을 나누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며 다시 확인한 사실이 있다. 나는 금산 간디숲속마을 질경이팀에서 설계자가 아니라 여러 참가자 중 한 사람이었다. 내가 강의하는 주강사가 아니라 배움의 사람이였다. 책과 글로만..
미션얼✗퍼머컬처 8미션얼 숲밭 — 생태·공동체·교육이라는 세 층지피층 — 삶교육, 마을교육이라는 삶의 문법숲밭의 가장 아래층은 지피층이다. 땅을 덮어 수분을 지키고 흙이 마르거나 씻겨나가지 않게 붙잡는 낮은 식물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지피층이 없으면 그 위의 모든 층이 마른다. 교육이 내게는 그런 층이었다. 와룡배움터에서 20여 년 가까이 이어온 삶교육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마을이라는 숲밭 전체를 마르지 않게 지탱해온 흙덮개였다.와룡배움터에는 배움과 놀이와 일상이 나뉘지 않는다는 교육관을 알게 모르게 학부모들과 운영위원들의 맘몸에 담고 있었다. 2013년, 나는 이 배움터에 생태교육과 놀이 몇 가지를 나누러 재능기부로 갔다. 그런데 정작 배운 사람은 나였다. 아이들과 놀며 나는 다시 배우는 법을 익..
미션얼✗퍼머컬처 7미션얼 숲밭 — 생태·공동체·교육이라는 세 층관목층 — 공동체, 자공공(自共公)으로 엮은 마을숲밭에는 교목층 아래 관목층이 있다. 큰 나무만큼 눈에 띄지 않지만, 교목층의 그늘과 지피층의 흙 사이를 이어주는 층이다. 공동체가 그렇다. 신학이라는 큰 나무와 일상이라는 땅 사이에서, 공동체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중간층으로 존재한다. 와룡배움터, 마읆뜰, 마을카페 콩닥콩닥, 함께나누는예배공동체 — 이 넷은 내게 하나의 숲밭 안에서 자란 서로 다른 관목이었다.그 넷을 하나의 문법으로 묶어준 계기가 있었다. 2016년 가을, 와룡배움터의 전환기 기획모임에서 나는 조한혜정의 책 『자공공』을 만났다. 자조, 공조, 공공. 이 세 낱말이 이후 내가 엮어간 공동체들의 문법이 되었다.공조로서의 와룡배..
미션얼✗퍼머컬처 6미션얼 숲밭 — 생태·공동체·교육이라는 세 층 교목층 — 생태, 오이코노미아로서의 청지기직헬라어 오이코노미아(οἰκονομία)는 두 낱말이 합쳐진 말이다. 오이코스(οἶκος), 집. 그리고 노모스(νόμος), 법 혹은 다스림. 합치면 "집을 다스리는 법" — 가정경영, 살림살이다. 신약성경에서 이 말은 청지기직을 가리킨다. 누가복음 16장의 그 유명한 "불의한 청지기"도 오이코노모스(οἰκονόμος), 곧 집을 관리하되 그 집의 주인은 아닌 사람이다.흥미로운 것은 이 한 낱말, 오이코스에서 두 개의 서로 다른 현대어가 갈라져 나왔다는 사실이다. 노모스(다스림)가 붙으면 이코노미(economy, 경제)가 되고, 로고스(λόγος, 말·이치)가 붙으면 이콜로지(ecology, 생태학..
미션얼✗퍼머컬처 5보냄받은 자리 — 일상생활사역연구소를 떠나며시간을 다시 2022년으로 되감는다. 세월호 10주기보다 2년 앞선 시간이다. 2022년, 나는 편지 하나를 썼다. "이런 날이 올 줄을 몰랐는데 막상 떠나가려고 하니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할지…" 14여년을 몸담았던 일상생활사역연구소를 떠나는 인사였다. 지성근 목사님, 박태선 목사님, 정한신 박사님, 차재상 목사님, 그리고 이미 떠났지만 여전히 응원해주신 홍정환 목사님. 이 이름들과 함께 걸었던 14년이 그 편지 안에 있었다.씨앗을 심고 관찰하고, 작고 느린 해결책으로 뿌리내리고, 변화 앞에서 창의적으로 대응해온 지난 14여 년의 끝에서, 나는 뜻밖의 문장을 써야 했다. "떠난다"는 문장이었다. 나는 이 일상생활사역연구소라는 화분 안에서 자랐..
미션얼✗퍼머컬처 4변화에 창의적으로 대응하라 — 0416세월호와 전환 기획2014년 4월 16일, 온 나라가 같은 화면을 보고 있었다. 배가 기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의 아이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따랐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믿었던 아이들이 돌아오지 못했다. 그해 봄 이후, 나는 이 문장을 다시는 예전처럼 들을 수 없게 되었다.같은 해, 나는 와룡배움터 운영위원으로 첫걸음을 떼고 있었다. 아이들이 줄어들던 위기 한복판이었고, 무엇이 옳은 방향인지 확신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세월호가 내게 준 것은 절망이 아니라 역설적인 다짐이었다. "우리와 우리 아이를 위해서 가만히 있지 말고, 실패해도 괜찮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아이들을 죽음으로 이끈 그해에, 나는 정반대의 문장을 마음에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