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 삶, 구원 (1391)인가?
일,삶,구원이 Motto가 된 경위
3년간의 안식(?-안쉴)년을 마치면서 하나님은 나에게 새로운 지경을 허락하셨다. 이름하여 학사회사역. 들어오기 전부터 조금씩 마음에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분위기가 허락되었고 거기서 하는 공부속에서도 후반기 1년정도는 학사사역과 관련한 고민들을 해 오 긴 했지만 여전히 방향을 잡지 못했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지 오리무중에 빠져 있던 시절, 불현듯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가 있었으니 우선 학사회 고유전화번호를 만들되 우리의 정체(identity)를 반영할 수 있는 것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었다. 하룻밤의 고뇌로 얻어진 결정체가 있었으니 일,삶,구원(1391)이었던 것이었다. 우선 남의 덕에 쓰게 되는 사무실의 새 전화번호뒷자리를 1391번(결국 643-1391로 낙착됨)으로 강력하게 추진하고 난 뒤 학사회의 홈페이지(www.gcfps.org)의 첫페이지에도 일,삶,구원을 명기하고 나니 그동안의 생각이 정리가 되면서 학사사역의 정체가 무엇인지,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윤곽과 가닥이 잡혀져 가게 되었다. 아주 하챦게 그리고 아주 우습게 출발된 아이디어가 점점 매력있는 표어가 되어가고 있었다. 며칠 뒤 나는 귀국후 아버님께 빌려 쓰던 핸드폰을 돌려 드리고 새 핸드폰을 하면서 앞으로 나갈 매달의 경비때문에 안타까워 하기보다 새 번호를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어쩔 줄 몰라하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011-9509-일,삶,구원 1391)
“일, 삶, 구원” 이 무엇인가?
성경이 이야기하는 구원은 단순히 소위 영적인 삶에만 국한되거나 혹은 교회나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마치 구원이 교회와만 관계가 있는 것처럼 강조되어지는 강단의 메세지와 가르침들, 오직 영혼구원만이 유일한 존재이유인 것처럼 경도되어 진행되는 선교단체의 모임과 훈련들, 그리고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스스로 주일외에는(때로는 삼일, 혹은 토요일은 조금 포함되지만) “구원”이라는 말이 아무 의미가 없거나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것처럼 바쁘게, 정신없이 살아가는 우리네의 나머지 6일간의 삶들이다.
그리스철학의 뿌리깊은 유산인 이원론적인 생각을 떨치고 성경의 원리로 돌아가야 한다. 주일이 중요하지만 나머지 6일도 중요하다. 일과 안식, 그리고 살림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삶은 어떤 의미에서 타락이전의 인류의 삶속에서 경험되어지던 것이었다. 죄와 타락 이후에 일도 안식도 살림도 고역과 율법주의나 안식없음, 그리고 살림이 아닌 죽임으로 변하게 되었다. 죄의 영향은 단순히 인간의 영혼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 그 위력을 떨쳤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얻게 된 구원은 일과 안식, 살림을 포함한 일상(routine)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어야 한다. 비록 아직 완성을 기대하고 있는 “이미와 아직 (already, but not yet)"이라는 완충지대 가운데 살고 있기 때문에 쉬운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일과 삶이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바 “보시기에 좋은” 원래의 모습으로 아니 훨씬 더 역사의 과정속에서 성숙한 모습으로 아름답게 경험되어야 한다. 이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요구되는 분명한 사명이다.
왜 “일,삶,구원”을 외쳐야 하나?
이런 분명한 사명에도 불구하고 전술한 바와 같이 지역교회는 자기 세(勢)불리기와 몸불리기에 급급하고 있는 실정이고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교회외에서는 구원을 경험하지 못하여 고통받고 있다. 만일 우리 gcf가 para-church로서 자기정체를 이해한다면 교회를 돕는 organism(organization의 한계를 극복한)으로 당연히 교회가 담아내지 못하는 부분을 채워야할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학생시절 ivf 출신들이 옛정을 생각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모임을 가지는 단계를 넘어선 시대적 사명(mission)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이렇게 거시적 측면이 아니더라도 대학졸업이후의 삶은 그야말로 다양하고 뿐만 아니라 매우 실제적인 문제들로 얽혀있게 마련이다. 미시적으로 한사람 한사람의 삶을 들여다 보면 도움이 필요한 영역이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왠만한 교회가 아닌 이상 지역교회가 20대 후반 3,40대의 삶에 밀착된 도움을 주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지금 모든 세세한 부분까지 우리 사역이 도움을 다 줄 수 있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을 잡으면 이 부분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 맥이란 일상의 삶(Everyday life), 나머지 6일(The other six days)의 신학과 삶에 대한 강조를 회복하는 것이다.
“일, 삶, 구원”-학사를 위한 mission을 넘어서 학사들의 mission으로
“일, 삶, 구원”이 우리의 mission 이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우리 모두를 향한 사역의 핵심내용이며 우리 학사들이 오늘 우리 시대의 지역교회를 섬길 수 있는 최선의 방향이다. 이 mission을 위해 물론 일정부분 간사로서 학사들을 챙기고 이런 사역으로 격려하는 일, 학사를 위한 mission이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캠퍼스 시절에 이미 배웠듯이(만일 배우지 못했으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IVF(GCF)는 학생(학사)을 대상으로 사역하는 mission이 아니라 학생(학사)들의 mission이다. 우리가 지금 있는 자리가 어디든지 상관이 없다. 그 자리에서 일, 삶, 구원을 외치자. 우리의 교회에서 균형을 잡게 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일, 삶, 구원을 주장하자. 후배들이 학사가 하는 일이 무업니까? 질문하면 얼지 말고 “일, 삶, 구원” 하고 말해 주자.
1391 지성근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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